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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할 일

What Must Be Done

아모레퍼시픽은 끊임 없는 도전 정신으로 해외 진출의 문을 두드려왔습니다. 제주의 버려진 땅과 황무지를 한 평 한 평 개간하여 녹차 밭을 만들었듯, 아무도 수출에 도전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만의 기술과 자부심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름이 지닌 가치로서의 명품名品이자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명품銘品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꿈의 묘목을 심다

푸르른 녹음이 짙은 이른 초여름, 경기도 오산의 아모레퍼시픽 뷰티캠퍼스에는 하나 둘 꽃망울을 틔우며 그 자태를 자랑하는 꽃과 나무가 즐비합니다. 이곳은 바로 2019년 재단장하여 문을 여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입니다. 아모레퍼시픽 제품에 원료로 쓰이고 있는 식물,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약재로 쓰였던 약초가 즐비한 공간, 그리고 블라썸 에너지를 자랑하는 향기로운 꽃밭 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지며 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 중 라벤더, 티트리 등 다양한 허브를 만날 수 있는 정원은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1960년 프랑스 코티사로부터 초청을 받아 유럽을 방문했던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이 남부 프랑스에 위치한 향수의 고장 ‘그라스’를 방문하여, 원료의 재배와 그 활용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1960년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이어지는 40여 일간의 유럽 시찰에 올랐던 창업자는 각 나라마다 다른 물빛과 흙빛, 대기의 냄새를 경험하며 끊임없이 서울과 개성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꽃이 만발한 그라스 농장과 작은 상점이 줄지어 있는 골목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증류 연기는 그 그리움과 설레임을 더 커지게 했습니다. 프랑스의 그 모습들이, 어린 시절 동백기름을 짜기 위해 압착하고 물을 끓였던 어머니의 부엌 그리고 인삼 향이 가득 날리던 개성의 거리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료와 기술도 세계적인 시장, 프랑스의 그것과 근본적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것을 가지고 세계 시장의 문을 끊임 없이 두드리겠다’라는 의지는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다져지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이어지는 40여 일간의 유럽 시찰에 올랐던 창업자는 각 나라마다 다른 물빛과 흙빛, 대기의 냄새를 경험하며 끊임없이 서울과 개성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꽃이 만발한 그라스 농장과 작은 상점이 줄지어 있는 골목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증류 연기는 그 그리움과 설레임을 더 커지게 했습니다. 프랑스의 그 모습들이, 어린 시절 동백기름을 짜기 위해 압착하고 물을 끓였던 어머니의 부엌 그리고 인삼 향이 가득 날리던 개성의 거리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원료와 기술도 세계적인 시장, 프랑스의 그것과 근본적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것을 가지고 세계 시장의 문을 끊임 없이 두드리겠다’라는 의지는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다져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꽃피운 우리의 가치

‘80%는 고객을 보고 15%는 경쟁자를 보고 5%는 지나온 과거를 보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합니다. 그때 이후로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이 떠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합니다.

우리는 1988년 ‘순(Soon)’ 브랜드를 통해 처음으로 프랑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후 1990년 8월 샤르트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프랑스 진출을 본격화했고, 순 브랜드는 한 해 동안 13억 원에 이르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 장기적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어려운 제품 특성과 유통의 어려움 등으로 결국 오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샤르트르 공장에서 새롭게 선보인 브랜드는 ‘리리코스(Lirikos)’ 였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현지의 화장 습관을 고려하지 않은 제품 개발, 프랑스어는 K를 잘 쓰지 않아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어색한 네이밍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여 사업에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게다가 순의 유통 판매를 맡았던 프랑스 파트너가 글로벌 뷰티 그룹에 매각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판매권까지 잃게 되며 그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습니다. 비록 비도 맞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프랑스 사업 경험으로 우리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을 얻었습니다. 글로벌 시장 진출 시 현지화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제품의 생산에서 마케팅에 이르는 각 단계에 대한 탄탄한 실력이 그것입니다. 비록 프랑스에서는 철수했지만 순과 리리코스는 치열한 도전의 산 증인인 셈입니다.

기존 사업을 정리한 후 다시금 프랑스 시장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스킨케어 제품이 주류인 국내와 달리 프랑스는 향수의 비중이 크고, 경쟁이 치열하나, 신제품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런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 독창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 향수를 선보이기로 결정, 롤리타렘피카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롤리타렘피카는 여성스럽지만 강하고, 달콤하지만 관능적인 향과 독특한 용기로 프랑스 여성을 매료시키며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리게 됩니다. 이후, 2011년 향수 부티크 아닉구딸을 인수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글로벌 인수 합병을 통해 다양한 노하우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말했던 프랑스 향수 사업. 우리는 그 사업을 통해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 대해 품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철저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구체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오늘날 세계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기존 사업을 정리한 후 다시금 프랑스 시장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스킨케어 제품이 주류인 국내와 달리 프랑스는 향수의 비중이 크고, 경쟁이 치열하나, 신제품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런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파문을 일으키기 위해 독창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 향수를 선보이기로 결정, 롤리타렘피카 브랜드를 런칭하게 됩니다. 롤리타렘피카는 여성스럽지만 강하고, 달콤하지만 관능적인 향과 독특한 용기로 프랑스 여성을 매료시키며 프랑스 향수 시장에서 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리게 됩니다. 이후, 2011년 향수 부티크 아닉구딸을 인수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글로벌 인수 합병을 통해 다양한 노하우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말했던 프랑스 향수 사업. 우리는 그 사업을 통해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 대해 품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철저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구체적으로 믿을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오늘날 세계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일본을 물들인 우리의 화장문화

일본과의 인연은 1971년, 일본에 동경지사가 개설되며 시작됐습니다. 처음 일본 시장에 선을 보인 제품은 진생삼미 라인이었습니다. ‘인삼을 이용한 화장품’은 일본 사람에게 생소한 것이지만, 우리의 원료와 기술을 일본에 알리고자 과감하게 판매 결정을 내렸습니다. 생소한 인삼의 효능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인삼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의학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어 홍보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 익숙하지 않은 원료와 향기, 그리고 아직은 가깝고도 멀었던 한국 제품에 대한 낮은 신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처음 두드린 일본 시장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화장품의 일본 진출은 인내와 끈기, 지극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실패라 단정하고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패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 진출의 경험을 기반 삼아, 회사는 더욱 더 과감한 해외 수출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1977년 6월 타이완에 삼미화장품 수출을 시작으로 아시아 인근 국가로 진출하는 날개를 폈고, 꿈은 이루기 위해 있다는 말처럼 1988년 3월에는 태국 사하그룹과 합작으로 타이아모레를 설립했고, 이어 6월에는 홍콩 현지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1989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삼미진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같은 해 3월 퍼시픽 아모레 말레이시아 합작회사 설립, 6월 타이완 현지 법인 설립, 7월 말레이시아 메이크업 쇼 개최가 차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어 1990년에는 말레이시아에 합작회사 설립 계약, 1991년 3월 삼미진 화장품 사우디 독점 판매계약 체결까지 인삼을 원료로 한 화장품 삼미는 아시아 공략을 위한 최대의 아름다운 병기가 돼 주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일본 진출을 꾀했을 때 일본은 넘어야 할 산이자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진출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놓은 디딤돌이자 교두보, 혹은 더 깊은 물을 퍼올리기 위해 부은 마중물이었던 것입니다.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도전은 2011년 다시 시작됐습니다. 1970년대 처음으로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후 우리에게는 그 동안 쌓은 글로벌 경험과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력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2011년 11월 일본 동경에 브랜드숍 오픈을 준비한 브랜드는 바로 에뛰드 하우스였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에뛰드 하우스만의 스타 상품이 필요하다 판단해, 품질, 감성, 스토리를 담은 수분가득 콜라겐 크림을 준비했고, 유명한 TV 뷰티 프로그램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일본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일본 현지 고객 특성에 맞춘 트라이얼 키트와 전용 색상 상품도 개발했습니다. 마침내 오픈 당일, 이 모든 노력은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 것입니다. 이런 진풍경에 일본 TV에서도 취재를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어 1990년에는 말레이시아에 합작회사 설립 계약, 1991년 3월 삼미진 화장품 사우디 독점 판매계약 체결까지 인삼을 원료로 한 화장품 삼미는 아시아 공략을 위한 최대의 아름다운 병기가 돼 주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일본 진출을 꾀했을 때 일본은 넘어야 할 산이자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일본 진출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놓은 디딤돌이자 교두보, 혹은 더 깊은 물을 퍼올리기 위해 부은 마중물이었던 것입니다.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한 도전은 2011년 다시 시작됐습니다. 1970년대 처음으로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후 우리에게는 그 동안 쌓은 글로벌 경험과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력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2011년 11월 일본 동경에 브랜드숍 오픈을 준비한 브랜드는 바로 에뛰드 하우스였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에뛰드 하우스만의 스타 상품이 필요하다 판단해, 품질, 감성, 스토리를 담은 수분가득 콜라겐 크림을 준비했고, 유명한 TV 뷰티 프로그램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2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일본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일본 현지 고객 특성에 맞춘 트라이얼 키트와 전용 색상 상품도 개발했습니다. 마침내 오픈 당일, 이 모든 노력은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엄청난 인파가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 것입니다. 이런 진풍경에 일본 TV에서도 취재를 나올 정도였습니다.

“흔히 길게 선 줄을 긴자 애플스토어에 아이폰 4s가 출시되던 날에 비교하는데, 에뛰드 하우스 오픈 당일에는 이에 두 배가 넘는 인원이 줄을 섰습니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상품 전략, 직원들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후 더욱 활발한 홈쇼핑 판매를 통해 일본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굳히고 오프라인 매장 오픈을 추진하며 에뛰드 하우스만의 노하우를 쌓고 두터운 팬층도 확보해 나갔습니다.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며 에뛰드 하우스는 최초 진출 시와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판단, 과감한 변화를 꾀했습니다. 에뛰드 하우스의 고객 동선에 위치한 지역을 연구하여 새롭게 매장을 오픈하는 동시에, 기존 매장 중 우수 매장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수 매장의 인테리어나 집기 등을 리뉴얼하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고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브랜드 최초 진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컬의 니즈를 반영하는 현지화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품,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프로모션 등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가이드에 기반한 일본 현지화를 진행, 고객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된 마음으로 전략에 기반한 업무를 실행해 줄 직원이 없다면 어떠한 훌륭한 전략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수한 인재의 유치 및 육성에 힘썼고 변화를 장려하는 조직, 항상 변화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에뛰드 하우스에는 제2의 모멘텀이 찾아왔고, 이것은 결국 고객층을 더욱 더 두텁게 하고, 고객의 충성도를 늘리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남다른 꿈을 꾸고 이를 이루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쉼 없이 씨앗을 뿌리고 길러낸 부지런한 농부였습니다. 인삼에서 시작해 한방화장품으로 커 나간 설화수, 바람과 돌무더기와의 씨름 끝에 일궈낸 오설록, 중국과 미국, 프랑스를 넘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아시안 뷰티까지. 사계절 내내 향기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우리는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 입니다.

또한, 브랜드 최초 진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컬의 니즈를 반영하는 현지화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품,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프로모션 등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가이드에 기반한 일본 현지화를 진행, 고객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된 마음으로 전략에 기반한 업무를 실행해 줄 직원이 없다면 어떠한 훌륭한 전략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수한 인재의 유치 및 육성에 힘썼고 변화를 장려하는 조직, 항상 변화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에뛰드 하우스에는 제2의 모멘텀이 찾아왔고, 이것은 결국 고객층을 더욱 더 두텁게 하고, 고객의 충성도를 늘리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남다른 꿈을 꾸고 이를 이루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쉼 없이 씨앗을 뿌리고 길러낸 부지런한 농부였습니다. 인삼에서 시작해 한방화장품으로 커 나간 설화수, 바람과 돌무더기와의 씨름 끝에 일궈낸 오설록, 중국과 미국, 프랑스를 넘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아시안 뷰티까지. 사계절 내내 향기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우리는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 입니다.